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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Yellow Magic Orchestra ~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 : YMO #1 멤버 ~ 호소노 하루오미/다카하시 유키히로/사카모토 류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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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llow Magic Orchestra ~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 : YMO #1 멤버

YMO

Yellow Magic Orchestra(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라는 명칭은 호소노가  1970년대  후반에 제창하고 있던 컨셉 '옐로우 매직'에서 왔다.

이것은 백마술 (선이나 백인등의 상징~특히 백인 음악)도, 흑마술 (악이나 흑인  등의 상징~주로 흑인 음악)도, 그 어느 쪽도 아닌 황색 인종 독자적인 음악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마술의 색을 인종의 색에 걸쳐 제창한 「황색 마술」(옐로우 매직)이다.

호소노가 YMO 이외로 「옐로우 매직」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음악으로는 틴 팬 알리의 곡 「옐로우 매직 카니발」, 호소노의 앨범 「하라이소」의 "해리 호소노 옐로우 매직 밴드"를 들 수 있다.

또 사카모토의 앨범 「천의 나이프」에서 라이너 노트로 쓴 호소노의 글에서도, 옐로우 매직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YMO는 1980년대 초반에 일어난 테크노/뉴웨이브 무브먼트 의 중심에 있던 그룹의 하나이며, 신디사이저와 컴퓨터를 구사한 참신한 음악으로, 1978년에 결성되고 나서 1983년에 해산까지 5년간 일본을 석권했다.

 

활동 기간 중에는 미국 등에서의 레코드 발매 및 콘서트 투어도 많이 했다.

이들은 현재도 영어권에서는 저명한 일본인 뮤지션들이다.

1993년에 일시적으로 재결성한 적이 있고, 또 2007년에도 다시 재결성했다.

 

70년대 당시 신디사이저를 구사한 음악으로는 이미 독일의 탠저린 드림이나  영국의 에머슨 레이크 앤 퍼머,  일본의  토미타 이사오등이 유명하며, 1978년의  디보 「Q: Are We Not Men? A: We Are Devo!」이나  크라프트벨크 「The Man-Machine」에 전자 악기가 그 음악 사운드의 핵심이었다.

 

YMO는 그 노선에 동양적 향취를 알기 쉬운 형태로 가사, 어레인지, 컴포지션 모두에 융합시켜 프로모션에서 황인종의 작품임을 주장하고,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나 코미디  프로그램 등에도 많이 출연해 적극적으로 노출을 늘려 가고 인지도를 높였다.

 

클래식, 레게 등 다양한 음악의 요소들을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는 반면, 포스트펑크적인 심플함이나 공격성과는 무관한 음악이다.

 

YMO는 그 패션도 특징적이었다.

특히, 초기의 앨범 재킷이나 라이브에서 멤버가 착용하고 있던 「붉은 인민복」은 그냥 일반적으로 「붉은 인민복」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깔끔한 짧은 머리,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유행한 「테크노컷」이라고 불리는 헤어스타일 들은 YMO의 비주얼 이미지로 일반적으로 알려졌다.

 

Yellow Magic Orchestra를 처음 만나다(내 이야기)

1981년 여름, 당시 통폐합되어 없어진 동양방송의 PD였던 권x규형이 미국에 갔다 오면서 음반 즉 원반을 많이 가져 왔는데 그 중에 특이한 음반이 하나 있었다.

그게 바로 Yellow Magic Orchestra 라는 밴드의 미국판 음반이었다.

 

잘 들어 보니까 소위 말하는 신디사이저(Synthesizer)라는 악기를 사용한 전자음악 스타일로 70년대 부터 인기있던 디스코 스타일의 리듬부터 퓨전 스타일의 자유로운 재즈 스타일 리듬, 그리고 오락실 게임 음악등 이미 1974~5년경부터 들었던 독일의 전자 음악 그룹 Kraftwerk (크라프트벨크)의 음악과는 성향이 다른 독특한 음악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앨범이 YMO의 데뷰 앨범으로 일본에서 먼저 발매된 후 미국에서 여성 코러스 더빙이나 마스터링을 다시 하는 등 여러 작업을 거쳐 미국에서 발매된 그들의 미국 데뷰 앨범이었다.

신디사이저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 내가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있었고 75~77 사이에 발간된 국내 전자 잡지에 "신디사이저 제작"이라는 기사가 있어 록밴드 음악을 하는 와중에도 그런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 발매된지 조금 시간이 흐르긴 했지만 이 음반을 알고 난 후 더욱 더 전자 음악 그냥 쉽게 말해 신디사이저 음악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 후 청계천 서점이나 중국 대사관앞 일본 서적 판매 서점을 돌며 신디사이저, YMO, 전자 음악 등에 관한 서적을 구해 읽으며 이러 저런 지식들을 모아 나갔다.

 

TOMITA ISAO나 KITARO 등 또 다른 스타일의 신디사이저 뮤지션들을 알게 되고 그들의 음반도 구입하여 듣게 되었다.

 

그러다가 1984년에 운좋게 도쿄를 가는 기회가 생겨 Roland JUNO-106 과 HAMMOND사의 JUGG BOX 라는 디지털 샘플링 드럼 머신을 구입하여 이 후 제작하는 많은 음악들에 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모든 일들의 시초가 바로 YMO 였다.

 

그리고 사카모토 류이치가 그렇게 아카데미 음악상을 타고 세계적인 음악가가 될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어쨌든 나는 사카모토의 음악은 이후 그의 솔로 시절보다 YMO 시절이 더 좋다.

 

[멤버]

호소노 하루오미 (일렉트릭 베이스/신디 베이스/코러스)

에이프릴풀, 하피엔도, 틴팬어레이를 거쳐 YMO를 결성.

YMO의 리더, 프로듀서이며 신디사이저와 컴퓨터를 이용한 YMO의 음악 스타일을 내세웠다.

종교나 민속학등 신비주의적인 취미가 있었는데 그러한 것들도 YMO의 음악에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라이브에서는 거의 베이스 연주에 치중하고, 곡에 따라서 신디사이저를 베이스 대신 연주했다.

YMO 해산 후의 솔로 활동에서는 특히 앰비언트, 일렉트로니카 등의 장르를 도입하고 있다.

 

다카하시 유키히로  (드럼스, 보컬)   

사디스틱 미카 밴드, 사디스틱스를 거쳐 YMO에 참가.

1978년 6월 21일 옴니버스 앨범 'PACIFIC' 수록의 '코즈믹 서핑'과 1979년  MAKOTO HIGHLAND BAND  'INJECTION' 등 컴퓨터의 비트와 동기화한 뒤 그루브를 만들어내는 드럼을 처음 연주한 드러머가 되었다.

YMO의 곡에서는 대부분의 곡에서 리드 보컬을 담당.  

패션, 디자인의 특기를 살려 YMO에서는 스테이지 의상 디자인을 하기도 한다.

YMO 해산 후 솔로 활동과 함께 다양한 뮤지션과의  콜라보레이션 및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다.

음악의 방향성의 차이 등으로 험악해지기 십상인 호소노와 사카모토 사이를 조절하고 있는 입장이기도 했다.

사디스틱 미카 밴드 시대, 록시 뮤직의 프런트맨으로서  런던에서 라이브 공연을 한 적이 있어, 결성 당시 유일하게 일본 국외에서의 라이브를 경험한 멤버였다.

 

사카모토 류이치 (키보드, 피아노, 신디사이저, 코러스)     

스튜디오 뮤지션  으로서 활동(오오타키 시이치나,  야마시타 타츠로의 앨범에 참가)중  YMO에 참가.

YMO에서는 마츠다케 히데키(신디사이저 프로그래머) 와 함께 녹음에서 악곡을 구축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라이브에서는 악곡의 어레인지를 도맡아서 했다.

YMO 해산 후  영화 음악 으로 성공하는 등 솔로 활동을 활발하게 해 오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와 작곡을 배우고, 도쿄 예술대학 작곡과, 이 대학원을 수료,

음악 소양의 베이스에는 클래식 음악이 있다.

「교수」라고 하는 별명은 대학원 시대에 다카하시가 붙여 준 것.

담당 파트에 대해서는 주로 연주하는 것이고, 일부의 레코딩이나 라이브,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는 이들 이외의 파트를 담당하는 일도 있었다.

사카모토 류이치는 라이브로 드럼을 연주하는 곡도 있다.

YMO는 원래는 컨셉 밴드로서 구상된 것이며, 호소노는 멤버의 인원 구성을 유동적으로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기본 멤버 자체는 처음부터 현재까지 이 3명이다.

Y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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